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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원더 , 차별과 편견으로 부터 싸울 용기

by 보름Moon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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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 알을 깨고 세상 밖에 나오다.

한 아이가 우주인 헬맷을 쓰고 침대 위에서 신나게 뛰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헬맷을 쓰고 있는 아이는 그저 장난기 많고 평범한 아이로 보이지만 사실 어기는 태어날 때부터 안면기형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다. 27번의 큰 수술을 견뎌 냈고 그로 인해 평범한 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다. 집에서 어기의 선생님은 엄마,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는 아빠와 누나이다. 10살이 되는 해에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본 적 없는 어기는 평범하지 않은 외모로 두려워한다. 하지만 어기의 엄마는 어기가 이제는 사회로 들어가야 하는 때인걸 알고 있었다. 두렵다고 피하고 어렵다고 안 하면 어기는 점점 커갈수록 더욱더 뒤로 숨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기 있는 엄마의 응원을 받고 어기도 용기를 내서 공립학교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역시 쉬운 건 하나도 없었다. 처음 만난 줄리안이라는 아이는 외모 비하로 어기를 낙담시키고 점심시간엔 어느 누구도 어기와 같이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기는 가장 좋아하는 과학 시간에 그동안 엄마랑 공부해온 실력을 발휘하면서 공부를 어려워하던 잭이라는 친구를 도와주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잭을 집에 초대하겠다고 엄마에게 데리고 온 순간 엄마는 눈물이 나는 벅찬 감동을 느꼈지만 애써 태연한 모습을 한다. 잭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됐지만 둘 사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핼러윈데이에 어기가 상처를 받으면서 멀어진다. 마음이 문을 닫고 학교를 다니던 어기에게 써머라는 여자 아이가 다가와 친구가 되자고 하지만 어기는 또 상처를 받을까 주춤한다. 그렇지만 어기는 다시 용기를 내서 써머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어기는 수업시간에 누구보다 총명했고 유머감각 있고 거기다가 매너가 좋은 아이였다. 아이들은 점점 어기의 내면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어기의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어기와 같이 점심을 먹고 싶어 했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사이가 틀어졌던 잭과도 화해를 하게 되면서 어기의 1년의 학교 생활은 감동적이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엄마는 용감한 슈퍼우먼이다.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 원더의 원작을 책으로 읽었으면서 어기가 받는 상처 들로 여러 번 울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는 더 많이 울었다. 줄리아 로버츠의 연기가 한몫한 것 같다. 내가 만약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면 나는 내 아이를 밖으로 당당하게 내놓지 못했을지도 있을 것 같다. 내 아이가 받을 뻔한 상처들, 불편한 시선들 그리고 편견으로부터 아이가 의기소침해져 눈물로 지새우는 밤을 상상만 해도 고통 그 자체이다. 어기가 처음으로 잭을 집에 데려가도 되냐고 엄마 앞에 섰을 때, 어기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고맙고 두렵고 감동적인 그 순간이 고스란히 표현되어서 나도 같이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녀의 온 마음을 다 드러낼 수 없다. 엄마라는 사람은 고마움 슬픔 좌절을 모두 삼키고 아이에게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매번 애를 쓴다. 아이들은 엄마의 근심 어린 눈빛에도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엄마는 항상 용감해야 한다.

 옮음과 친절 함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는 친절함을 선택해라.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같은 반에 틱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에서야 그 행동이 틱 때문에 나온 것이라는 걸 알지 사실 그때는 왜 저러는 걸까 나 혼자 만의 궁금증을 갖게 하는 그저 성가신 아이였다. 그 아이는 간헐적인 소리를 질렀지만 그런 행동을 미안해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그 아이는 그러면서도 항상 웃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아이에게 웃어 주지 않았다. 대분분에 반 아이들은 시끄럽다고 불평을 했고 어떤 아이는 그러려면 집에나 가라는 못된 말로 선생님한테 불려 가기도 했다. 우리는 사실 그 아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그 행동이 수업 중에 방해가 되니 잘 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일들에 우리는 불평을 하고 어느 누구 하나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잊혔던 그 아이가 원더 영화를 보고  불현듯 생각이 났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함과 미안함이 섞여 생각이 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얼굴 생김새부터 목소리까지 어느 하나 같은 사람이 없다. 하물며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들어도 완전히 똑같이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나와 다름을 마주 할 때는 비판하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인정해 주지 않으니 절대 서로에게 친절할 수가 없다. 우리가 만약에 서로의 다른 상황들과 가치관만이라도 조금씩 이해를 해주고 친절을 베푼다면, 내 목소리만 내는 힘겨운 싸움에서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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