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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애니메이션 리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용감한 아이의 모험

by 보름Moon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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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숨어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는 항상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한번 보고 웃고 넘기는 오락성만 강조하는 다른 애니메이션과는 차이가 크다. 10년 전에 이영화를 처음 봤지만 이후에 몇 번을 다시 봐도 가슴을 울리는 무엇인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10살 아이 치히로가 요괴들의 세계로 부모님과 함께 가게 되었을 때 부모님이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음식을 제멋대로 먹으며 결국엔 돼지로 변해 버리는 장면은 조금은 충격이었다. 음식은 인간의 기본적이 욕구를 표현한 것이고 치히로의 부모님은  최소한의 유혹에도 그냥 넘어가 버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인간에서 돼지가 되어 버리니 자식도 못 알아보게 되니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치히로는 부모님과는 다르게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같이 먹자는 말에도 내 것이 아니니 손대지 않겠다며 극구 사양한 치히로만 인간으로 남았게 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이후에 거미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장면에서 쉼 없이 일하는 할아버지 곁에서 같이 일하는 숯덩이들이 너무 귀여웠지만 일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는 그 설정이 너무 현실 적이어서 놀랬다. 무거운 숫돌을 옮겨야 하는 숯 먼지라니 얼마나 놀라운 발상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지독한 현실에서 그들이 먹는 음식이 별사탕이라는 것이  '꿈을 먹고살아요' 하는 것 같았다. 치히로도 살아남으려면 유바바에게 찾아가 일을 해야 했다. 작가는 아마도 어른이나 미숙한 존재나 일을 해야 그 가치가 생긴다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치히로라는 이름은 빼앗기고 센으로 살아 가지만 남들이 기피하는 더럽고 어려운 일도 도맡아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간다. 목욕탕 청소 씬에서 오물 신이라며 더러운 신이 등장하는데 그는 알고 보니 어느 큰 강의 신이었다. 감독은 항상 환경오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이 오물 신이 뒤집어쓰고 있던 온갖 더러운 것들은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로 이것을 다시 인간인 센의 손으로 깨끗하게 해 주었다는 설정은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에 가오나시라는 요괴가 등장하는데 외롭고도 고독한 얼굴 없는 이 요괴가 현대인에 어두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가오나시는 주변에 있는 다른 요괴들에게 가짜 금으로 환심을 사고 관심을 얻으며 대접을 받는다.  대접받은 음식을 아무리 먹어고 배가 부르지 않는 가오나시는 금을 받아 내려는 아부와 아첨으로 배를 채우고 있으니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결국엔 주변에 있던 요괴들 까지 잡아먹게 된다. 그렇지만 센은 달랐다. 센은 가오나시에게 진심의 친절을 베풀어 주었지만 그가 주는 금은 자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며 극구 사양한다. 이 모습에 가오나시는 센에게 더욱더 집착하게 되는데 나는 이 모습이 요즘 사회에 널려있는 가오나시 인간들의 외로운 마음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만약 나에게 조건 없이 진정으로 친절을 베풀어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말 재미있었던 포인트는 또 있었다. 유바바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아들이 유바바 언니 제니바에 의해서 햄스터로 변했는데 물질과 재물만 중요시하는 유바바 눈엔 더러운 생쥐일 뿐이었다. 어쩌면 내면을 중시하던 다른 인물이었다면 외모가 변했어도 자식은 알아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부분도 감독이 말하고 싶어 하던 메시지였던 것 같다. 고맙게도 모든 인물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해피앤딩으로 끝나게 되지만 영화를 다 본 뒤에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영화였다. 삶에 지친 어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이다.  

하쿠가 유바바 하수인으로 살고 있는 이유

치히로를 요괴들의 세계에서 구해 주었던 일등 공신을 하쿠였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하쿠는 이미 치히로를 알고 있었지만 치히로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쿠 자신조차도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유바바의 하수인 노릇만 하면서 다른 요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하쿠가 어떻게 치히로를 구해 줬을까? 결론부터 말해 보자면 하쿠도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겨 버린  강의 신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빼앗겨 버린 뒤로 자신의 존재도 가치도 모두 잊어버리고 힘 있는 자 옆에서 하인 노릇만 하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멋있었던 장면은 치히로가 고하쿠라는 진짜 이름을 불러 주자 하쿠는 자신을 다시 찾게 되면서 빛을 냈다.  진짜 이름을 불러 주었더니 진정한 그가 된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 불러 주는 이름은 중요한 것이다. 대부분 알고 있듯이 교도소에서는 죄수들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 모두 숫자로 부른다. 이름을 뻬앗는 대신 통제하기 쉬운 숫자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 순간부터 그들은 각자가 갖고 있던 본연의 모습, 폭력적이고 잔인한 모습까지도 통제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유바바는  노예들을 통제하기 쉽도록 그와 계약한 모든 이의 이름을 빼앗고 점차 그들 자신조차도 잊어버리게 했을 것이다. 천재적이다. 하긴 보통 회사에서도 서로 이름을 부르는 대신 직급을 부르면서 상하 관계를 중시하기도 한다. 감독은 하쿠를 예시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고 진정산 나로서 살아가는 그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면 어떤 인간이 되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름은 바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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