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소인으로 살아가기 힘들지만 즐거운 인생
아리에티의 가족은 얼마 남아 있지 않는 소인 종족이다. 아빠, 엄마 그리고 아리에띠 이렇게 셋은 마루 밑에서 집을 짓고 보통의 인간들에게 물건을 빌려 살아간다. 이 집에는 할머니만 살고 계셨는데 손자가 집에 들어오게 되면서 아리에티 가족은 걱정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소인 종족은 인간들의 눈에 띄면 그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기 때문이다. 14살인 아리에띠는 드디어 아빠를 도와 인간들이 사용하고 있는 부엌으로 들어가 설탕을 직접 빌려 올 수 있게 되었다. 인간들에게 빌린 여러 가지 작은 도구 들로 탐험하듯이 집안을 다니고 각설탕 하나에 너무 행복하다. 그러나 티슈도 빌려야 하는 상황에서 손자인 쇼우 눈에 띄게 되고 아리에띠 가족들은 그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던 중에 원시생활을 하는 다른 소인을 만나게 된 아리에띠 가족은 종족을 만나 기쁘고 희망찬 앞날을 꿈꾼다. 그렇지만 쇼우는 가족이 옆에 없는 외로운 아이로 아리에띠와 더 가까운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에 설탕을 갖다 주고 부엌을 멋지게 바꿔 주게 된다. 그렇지만 이건 아리에티 가족들을 위한 일이 아니었고 결국엔 살던 집을 떠나기 위해서 짐을 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쇼우를 돌봐 주던 할머니가 소인의 존재를 알아 버리고 아리에티의 엄마를 잡기까지 한다. 욕심과 의심이 많은 이 할머니는 소인들을 다 잡아서 큰돈을 벌고 싶기도 했지만 쇼우의 용기로 아리에티 엄마는 탈출하고 무사히 가족 곁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리에티 가족 셋은 새로운 집을 찾아서 긴 여정을 떠나고 아리에띠와 쇼우는 서로의 앞날에 희망을 빌어 주면서 이별하게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아리에띠 집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
아리에띠 가족은 키가 10 센티도 되지 않은 작은 키로 보통 인간의 물건을 빌려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간들에게 빌린 사소한 물건들은 모두 거대해서 하나만 가져와도 몇 번을 나누어 쓸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의 물건을 빌려 쓰는 것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달콤한 각설탕 한 조각으로 몇 달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참 재미있게 들렸는데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달콤한 존재를 얻기 위해서 험난한 모험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안쓰럽기도 했다. 아리에티 아빠는 현실에서 존재했다면 아마도 위대한 발명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가 영화 속에서 만들어 놓은 수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감탄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렌치로 만들어 놓은 도르래와 못으로 만든 계단들 그리고 용수철로 만들어 놓은 수도 시설 등 그의 능력과 상상력이 흥미로웠다. 특히 설탕을 빌리려고 테이블을 오르기 전에 양면테이프를 이용해서 손발로 기어 올라간다는 발상은 지금에 우리에게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재밌는 생각도 해보았다. 조그만 꼬마전구를 렌턴으로 쓰며 낚시찌를 갈고리로 만들어 밧줄을 타는 그들의 응용력도 볼만 하다. 특히 아리에띠 머리에 고무줄 대신 꼽아 놓은 작은 집게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아리에티가 각설탕을 구하기 위해 아빠와 처음으로 인간들의 부엌에 들어선 순간 어두운 부엌에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리들은 그동안 아리에티가 마루 밑에서 들어오던 소리였다. 소리로만 듣고 상상 왔던 모습을 어둠 속에 눈으로 확인하는 아리에티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극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감독의 연출이 훌륭하다. 평범했던 우리가 갑자기 소인 종족이 된다면 벌어질 법한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에피소드들이 잔잔한 배경에 잘 녹아 있다.
절실하게 살고 싶은 아이와 삶에 의욕을 잃어버린 아이
심장병으로 할머니 집으로 요양을 오게된 쇼우는 행동이 조심스럽다. 반면에 매일이 모험 같은 아리에티는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버라이어티 하다. 이런 둘이 만나 이루어질 수 없는 우정을 쌓게 된다. 영화 초반에 쇼우는 거의 누워서 침대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아리에티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런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한다. 아리에티의 존재를 확신하고 친구가 되고 싶은 쇼우는 조금씩 침대에서 나와 설탕을 놓아두거나, 인형의 집에 부엌을 떼어다 주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역시 사람은 어떤 일이든 목적의식이 있어야 살아갈 의지가 생기나 보다. 아리에티가 쇼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면서 모습을 드러내던 꽃밭 장면에서 둘의 대화는 이 둘이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에게 들켰지만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 모험을 떠나야 한다는 아리에티와, 소인 종족들은 결국엔 다 멸종해서 죽게 될 것이라며 비관적인 미래를 예견하는 쇼우의 모습에서 이 둘이 얼마나 다른 삶의 태도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결국엔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이겨내고 살아가겠다는 아리에띠의 절실한 용기가 쇼우에게도 전해 지면서 죽음에 대해서 수용적이던 쇼우가 그의 병을 이겨 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인간들 각자가 처한 인생들을 용감하게 마주하며 이겨 내고, 쟁취하면서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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